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문단 편집) === 무함마드 사후 후계자 선정과 이슬람 세계의 분열 === 그러나 이런 유력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알리는 무함마드 사후 후계자 경쟁에서 [[아부 바크르]]에게 밀려나고 말았는데, 특히 이 선정은 알리가 이제 막 사망한 무함마드의 유해를 수습하느라 회의에 참가하지 않는 동안 '''기습적으로 결정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분열을 야기했다.''' 알리를 지지하는 세력은 생전 무함마드의 언행과 알리의 공적, 무함마드의 사위이자 유일한 외손자들의 아버지인 알리의 정통성은 다른 후보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고, 무함마드에게서 발산되던 권위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알리에게서도 느껴진다고 주장했으며, 최소한 회의에 참가조차 하지 못하고 모든 상황이 끝난 이후에야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것보다는 훨씬 존경받고 배려받을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했다. 반면 무함마드의 장인이었던 아부 바크르를 지지하는 세력은 무함마드의 후계자이자 이슬람의 지도자는 혈연 따위로 계승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점이야 말로 무함마드가 그토록 비난하던 특권층의 세속 왕조의 혈연계승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게다가 무함마드는 ‘신의 마지막 사도’이므로 알리를 지지하는 세력이 주장하는 알리에게서 느껴지는 특별한 느낌이란 그저 느낌일 뿐이며, 역으로 알리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무함마드와 알리와의 혈연관계나 개인적 카리스마 같은 요소는 알리가 세속 군주처럼 군림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음을 지적했다. 즉 지금까지 알리의 강점으로 여겨지던 모든 것들이 무함마드의 사후에는 알리가 무함마드의 후계자 지위에 올라서는 안 되는 이유들이 되었으며, 알리의 입장을 축소시키는 사항들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거기에 아라비아 반도의 부족 지도자를 뜻하는 ‘셰이크’ 라는 단어는 ‘나이 든 남자’ 라는 의미를 지녔는데, 당시 60세에 가까운 아부 바크르와 달리 알리는 이제 막 30세를 넘은 시점이었고, 이런 나이 차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보다는 아부 바크르 지지파의 주장에 공감하도록 만들었다. 첨예한 대립이 시작되고 논쟁이 시작되면서 분열은 점점 깊어졌고, 이 와중에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가 유산하는 일까지 발생하자 양 진영의 분위기는 최악으로 다다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분열의 양상을 통해 아부 바크르의 지지자와 알리의 지지자는 각기 다른 정체성을 품기 시작했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시초가 되었다.[* 다만 수니파에서는 아부 바크르 선출이 누구의 반대도 없는 만장일치였음을 주장하며, 애당초 분열의 씨앗은 없었다고 주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